이번 시간은 앞서 1편 격으로 설명한 두 인물 이후 나머지 진압군 소속 3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솔직히 영화에서는 아군, 적군이 나뉘긴 하는 상황이지만, 모두 대한민국 군복을 입고 싸우느라 누가 누구인지 많이 헷갈린 것도 사실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같은 편끼리 총구를 겨누는 모습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합니다.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되며 이후 설명할 3인은 가장 군인다운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가신 분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 극중 인물 공수혁 (정만식) / 실존 인물 정병주 특전사령관
1975년 특전사령관으로 임명되어 1979년까지 역임한 특전사의 대부격인 인물이자 12.12 군사반란 당시 쿠데타에 반기를 든 3인의 장성 중 한 명입니다. 당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지원 요청에 정병주는 9공수를 반란군이 집결해 있던 30사단으로 출동시켜 그들을 위협했으나, 반란군이 이 사실을 알게 되어 그들은 오히려 정병주의 체포 명령을 지시하게 됩니다.
자식같이 믿었던 후배들에게 배신을 당해 총상을 입고 체포되어 강제 예편된 이후에는 꾸준히 12.12 사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부당성을 주장하며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88년 10월 갑자기 행방불명되었는데 결국 한 야산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생전에 그는 김오랑 소령의 가족을 살뜰히 챙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을 배신했던 많은 후배들이 있었지만, 체포 당시 끝까지 그를 엄호하다 총상으로 사망한 김오랑 소령의 부인을 찾아 고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고 위로했고, 본인의 자식들에게도 말버릇처럼 자신이 죽은 후에도 김오랑 소령의 묘소를 참배할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진정한 의리를 알고 이를 몸으로 행한 큰 인물인데 참으로 석연치 않은 죽음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는 현재 국립현충원에 안치되어 있는데, 그 비석에는 이름 석 자 말고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유족의 뜻을 따랐기 때문인데, "명령을 생명으로 여기는 군인들이 상관에게 총질을 하고도 버젓이 활보하는 세상에 고인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2. 극 중 인물 김준엽 (김성균) / 실존 인물 김진기 헌병감
그는 대한민국 육군 장군이며 최종 계급은 준장입니다. 1979년 육군본부 헌병감으로 재직 중 당시 합수부장 전두환의 월권행위를 정승화 계엄사령관에게 보고하기도 한 인물입니다. 12.12 군사반란을 빠르게 인지하여 당시 청와대에 가 있던 전두환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당시 하나회 소속인 대통령 경호실 병력에 의해 실패하게 됩니다. 결국 반란군의 승리 후 국군보안사령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기도 했고, 그들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 싫어 예비역 준장으로 자진 예편하여 군을 떠납니다.
그는 예편 후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반란군 주역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싫어 아예 섬으로 들어가 양식업을 하는 등 은둔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군 출신의 전문성을 살려 영국전략문제연구소와 일본평화안전보장연구소에서 국제관계 및 지정학을 연구했습니다. 1987년에는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과 함께 신군부의 만행을 폭로했고, 노태우 정부에서 여러 보직을 제안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후 문민정부 시절 한국토지공사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93년 예비역 장성들과 함께 전두환을 내란죄 등으로 고발하였습니다. 김진기는 2006년 지병으로 사망하여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3. 극 중 인물 오진호 (정해인) / 실존 인물 김오랑 중령
12.12사태 당시 김오랑 당시 소령은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도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을 유일하게 엄호하다 6발의 총상을 입고 교전 중 사망한 인물입니다. 원래는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되었다가 동료 장교들의 항의로 서울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김오령 소령의 부인 백영옥 씨는 원래도 시력저하증을 앓고 있었는데 그날의 충격으로 아예 실명이 되었고, 군인 아파트에서도 쫓겨나 부산의 복지시설로 들어가 전화 상담 봉사활동을 하며 지냈으며, 1990년 전두환,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려 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번번이 소송이 보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91년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던 자비원 마당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처음에는 자살로 발표되었다가 유족들의 항의로 실족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유족들은 그녀가 떨어진 난간의 높이가 어른 허리 정도 높이인데 그 높이에서 실족사를 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는다며 그녀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교전 당시 최세창 제3공수특전여단장은 박종규 중령에게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 체포를 명령하는데, 박종규는 김오령과 당시 관사 위아래층을 쓰며 부부끼리도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박종규는 사령관실을 공격했고 그로 인해 김오령 소령이 사망하게 된 경위를 부인인 백영옥 씨가 알게 되어 왜 그랬냐 원망하니 "나는 군인이니까 명령대로 한 거요!"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합니다. 훗날 박종규는 군사 반란 가담 혐의로 군인연금도 끊기고 힘겹게 살다가 2010년 식도암에 걸리자 자신은 하늘의 벌을 받는 것이라며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다 사망에 이릅니다.
김오령 소령은 1990년이 되어서야 중령으로 추서 되었고, 2014년 4월이 되어서야 보국훈장 삼일장이 유족들에게 전수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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